책제목 : 판사유감
저자 : 문유석
출판사 : 21세기북스
저자는 현재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20여 년간 판사 생활 및 하버드 로스쿨 해외연수과정등을 경험하고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들을 엮어 ‘판사 유감’이란 책을 냈다.
흔히 판사라는 직업은 힘들고, 고리타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고압적인 포스를 느끼게 하며 365일 일에만 파묻혀 살 것 같고 재미없는 일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져왔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그랬다. 배석판사시절과 부장판사 때 경험한 판사 생활과 그에 따르는 일련의 인간 군상에 대한 생각을 적었으며 그러한 일을 하면서 배운 느낌들을 수필을 쓰듯 읽기 쉽게 풀어간다.
딱딱한 법 용어로 쓰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도 달았다.
1부는 ‘판사, 사람을 배우다’ 2부는 ‘판사, 세상을 배우다’ 총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재판을 하면서 피해자, 피고인 등 여러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처절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라는 인지상정의 감정도 있으며 그러지 말았어야 하지 라는 당연지사의 생각도 있다.
‘파산이 뭐길래’라는 제목의 사건은 개인파산면책과 개인회생 관련 내용인데 그리 단순한 사건들이 아니라고 한다.
개인파산면책이란 가진 재산 모두를 털어 빚잔치를 하여 나누어 주고 남은 빚은 탕감 받는 것이고, 개인회생이란 수입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일정 기간 빚을 갚아 나가고 남은 빚은 탕감 받는 것이다.
IMF 시절 거래처들의 연쇄부도로 인해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사장은 파산을 신청을 했으나 런던음악학교에서 수학중인 세 딸과 부인의 존재를
알고 재산 은닉을 의심했다가 실제로는 음악 세계대회에 수상한 이력이 있는 음악 영재로 영국 정부 장학금과 알바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으며 어려운 회사 사정과 달리 몰래 돈을 은닉하여 영국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송금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또다른 사건을 보자.
학원강사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언니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해 조금씩
도와 주다 되려 파산신청을 한 경우가 있다.
계속 도와 주기 힘들었지만 노모의 간절한 바램으로 조력이 발등을 찍은 케이스다.
필자가 말하는 우리나라의 파산자들의 종류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기 가족이 빠듯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가까스로 충당하다가 실업, 질병 등의 이유로
감당할 수 없게 된 사람들, 조금이라도 잘살아 보고 싶어서 돈을 벌어 보려고 이것저것 애쓰다가
망해 버린 사람들, 자기도 겨우 자기의 앞가림만 하는 상황에서 그 놈의 정과 핏줄에 매여 있는
한 부모 밑의 형제, 친지의 빚 보증을 어쩔 수 없이 섰다가 같이 망한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렇게 필자는 판사 경험을 쌓아가면서 파산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파산한 기업은 청산되어 소멸하지만, 파산한 인간은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도전하다가 쓰러진
인간에게는 무덤 대신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활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제가
배운 것입니다” (p48)
채무자에 대한 법원의 행위와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사건을 담당하는 파산부의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법원에서는 주로 잘못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누구보고 누구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거나,
남의 집을 팔아 빚을 받아 주거나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개인파산, 개인회생사건 한 건 한 건
은 한 사람을, 한 가정을, 한 아이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회사정리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회사가 살아나면 주주도, 근로자도, 협력업체 사람들도 살아납니다. 파산부는 회생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p50)
파산부가 아닌 국민참여재판에서 있었던 한 사건은 겉으로 보기엔 지속적이며 단순한 절도
사건에 대해 일방적인 선고를 내리기 이전에 이렇게 오랫동안 반복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런 사람들을 사회와 격리를 해야 하는지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40대 후반으로 자신의 범죄 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있으며 22년간 절도로 사회와
격리되었는데 법정에서 난동을 부리며 ‘나는 단 한 번도 용서받아 본 적이 없다’ 라고 한다.
저자는 그의 말에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신과적으로 치료나 상담의 필요가 있을까하고 정신과 의사에게 문의결과 ‘이런 사람에겐 의사
보다 엄마가 필요합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즉, 약물이나 주사나 상담보다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자신이 이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게 해 줄 소속감과 직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 대상의 사건으로 여러 배심원들의 장시간 토론의 결과 마지막 전과 형량보다
낮지만 결코 적지 않은 징역을 선고했다고 한다.
피고인은 한평생 단 한 번도 용서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일 용서를
받는 것인지 모른다.
살인죄와 같은 중범죄와 관련된 양형의 문제를 보자.
살인죄의 경우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가 된 국가중 하나로 최대 15년의 무기징역이
2010년 4월15일 형법개정으로 30년으로 상향된 결과에 대해 양형 기준의 상향이 가장 효과 있는
대책이긴 하나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한다. 양형 기준을 정해도 살인죄 등
중범죄의 성질상 선택 가능한 형량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양형 기준이 정한 범위 중
최하한을 선택하는냐 최상한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양형
기준을 징역 15년 이상 무기징역까지로 정했을 때 대부분의 재판부가 징역 15년만을 선택하게
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법관으로써의 숙명적인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오판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죄는 무간지옥에서 영원히 속죄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
지요. 늘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법정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으로써, 가족이란 이유로, 가족 때문에 겪어야 하는 사건들에 대한 필자의 솔직하고 파격적인
생각은 마냥 웃을 수도 그냥 바라보기엔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저는 이 모든 끔찍함의 배후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가부장주의, 남성우월주의가 괴물처럼 도사리
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히도 한국의 엄마들이 조장하는 면이 크고요. 아들은 항상
큰 꿈을 꿔야 하고, 마누라를 휘어잡아야 하고, 사내대장부가 소소한 일에 연연해선 안 되고, 사
내놈이 욱하는 심정에 실수할 수도 있는 거고, 남의 집 귀한 딸을 강간해 놓고도 판사에게 탄원
서를 내서 한다는 소리가 “젊은 혈기에 실수한 건데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을 용서해 주세요”
(중략)
판사는 3D 직종이랍니다. 이런 사연들만 보면서 살다 보면 인간에 대한 절망과 냉소에 빠지게 돼
요. 그래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나약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아야겠죠. 그래서 답을 찾을
능력도 없는 주제에 구원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고 합니다” (p99)
인간이 살아가면서 좋은 것만 입고 맛있는 것만 먹으면 좋겠는데 이러한 행위가 결코 이것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마냥 좋은 것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것만 비싼
것만 그 무엇보다 좋은 극한의 즐거움은 파국에는 자신을 파괴하는 쾌락의 길로 들어선다는 내용
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
“100배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하거나, 100배 더 비싼 재화를 소비한다고 인간의 뇌가 지각할 수 있
는 쾌락이 100배 늘어날 도리는 없지요.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부유층이 마약 사건을 일으켜 법
정에 서는 경우를 볼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권태’입니다. 이것저것 다 해 보니 좋은 차를
타든 맛있는 것을 먹든 여행을 가든 시큰둥하고, 조금이라도 더 큰 자극을 찾다 보니 마약으로
뇌를 속일 수밖에요” (p102)
법원의 도움으로 1년간의 해외연수를 한 하버드 로스쿨과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 법대와의 비교를
보니 한국 교육 특히 대학교육의 현주소를 보니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감정인지 모르겠
다.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이 왜 다른지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들어보자.
1.하버드 홈페이지에 모든 교수의 강의 평가표가 있다. 이것은 종강 날에 학생들이 작성하여 제출
한 강의 평가를 종합한 것이다.
2.학문의 풍토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3.모든 질문을 존중하는 교육 방식이다.
4.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시스템의 차이, 학문 풍토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차이는 이곳
에서는 ‘정성’, ‘성실’ 같은 평범해 보이는 가치를 우리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자기가 맡
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당연한 문화다. 교수들도, 학사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도서관의 사서들도,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도 다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
서 즐거움을 찾는 단다. 밥벌이하려고 마지못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강조하는 필자의 말은 명언 중의 명언이 아닐까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좋은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며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본질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판사, 세상을 배우다”라는 제목으로 2부에서 필자가 강조하는 내용은 2012년 부장판사로
일하면서 법원 내의 경직된 조직 문화와 소통 문제에 대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부장판사와 배장판사와의 관계, 식사 시 나타나는 현상들, 법원장실에서의 에피소드, 엘리베이터
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법관들의 행동들을 보자니 그 조직도 여타 다른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미소를 짓게 된다.
다른 조직과의 소통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고민을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필자의 일침은
속연해지기까지 한다.
“어떻게 보면 참 판사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너무나 높아졌어요.
눈높이에 맞게 재판을 하려면 역설적이지만 야근할 시간이 없습니다. TV를 10년간 안 보기는커녕
가능만 하다면 신문도 편향되지 않게 서로 다른 입장의 신문을 같이 보고, 인터넷 여론의 흐름도
살피고, 세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관심을 갖고,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
에 관한 시대정신을 담은 좋은 책들도 읽고,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
고 고민해야 겨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게다가 평생 법관으로 살아가려면 심신 모두 건강해야 하고, 이 또한 부단한 노력을 요합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 관리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판사도 감정노동자이기 때문이지요.”
(p224)
에필로그에서 밝히는 필자의 얘기는 진정으로 우러나는 말 같아 내가 지금껏 생각한 판사와
다르며 너무나 인간적인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동료, 선배, 후배, 삼촌, 친구의 모습이 보여 더
욱 가깝게 느껴지게 된다. 일생에 한 번 갈 기회가 없을지라도 재판장에서 보여지는 법관들의
모습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틈만 나면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고 외치며 아름다운 지구별 구석구석 여행할 계획을
세웁니다.
단지 시험 하나 잘 봤다는 이유로 안정된 삶, 막중한 책임, 보람 있는 일을 할 기회를 부여 받았
으면서도 늘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길은 없을까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p244)
'책리뷰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저씨 심리학 (신세대 아재를 위한 지침서) (0) | 2018.08.31 |
---|---|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김희림) (0) | 2018.08.09 |
블록체인 매니지먼트 (블록체인이 경영에 접목될 때 일어날 창조적 혁신) (1) | 2018.07.27 |
생각 수업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질문) (0) | 2018.07.21 |
왜 사업하는가 (사람도 사업도 다시 태어나는 기본의 힘) (2) | 2018.07.11 |